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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 초청 강연회 [강연후기]

관리자 1970-01-01 09:33:27 조회수 3,758
 
안도 타다오 초청강연회
 
- 주최 : 한국건축가협회
- 주관 :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 후원 : 한솔건설, 일송건축, 갤러리현대, 가나아트 갤러리
- 일시 : 2007년 11월 5일(월) 오후 6시30분
- 장소 :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 다음 아래 글은 초청강연회에 참석하여 노트한 것을 다시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일본어로 강의한다. 20살부터 오직 건축공부만해서 영어공부를 못했다. (농담)
나는 건축 정규과정을 받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전혀 건축공부를 하지 않았다.
단지 건축을 좋아해서 독학했다. 어려웠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건축문화를 교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서울 청계천을 방문했다.
대단한 한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천복원이라는 “21C 사람들을 위한 공간” 하천 주변을 걸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했다. 지구내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일본도 도심지 하천복원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유럽에서 건축가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장누벨, 제임스 프렐, 노만 포스터가 있었다.
이 분들을 만나기 전 렌조 피아노와의 선약을 잊어버렸다. 렌조피아노가 화가 많이 났다.
식사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그 분들은 렌조피아노를 바람마치고 자기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자신들을 대단한 건축가로
생각해주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사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그리고 이 분들은 나를 대단한 건축가로 생각해준다.
건축을 잘해서가 아니라 “건축을 독학하고, 10대 후반에 권투를 했다는 것”에 크게 생각해 준다.
나는 권투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얻어 맞는 것이 인생이구나. 이렇게 맞아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20대 초반에 유럽에 갔다. (지구 전체 지도를 보여주며: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생각했음)
그때는 돈은 없어도 체력은 좋았다. 건축을 배운 친구가 파르테논 신전을 꼭 봐야 된다고 해서 가서 봤다.
사실 처음 보고 몰랐다. 그래서 4번을 찾아갔다.
 
요즘 젊은이는 건축을 가르켜 달라고 한다.
나는 건축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이지 가르켜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를 돌면서 “지구는 하나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전 세계를 매력적인 곳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서울의 청계천은 유럽에서도 굉장히 놀랍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러한 일은 압도적인 리더가 있어야 가능하다. 일본도 이러한 도심지 하천복원을 하려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일본은 못 할 것이다.

우리 건축가들은 열심히 전 세계에서 일했다. 그러나 무계획적이다. 유럽 사람들이 일본 한복판 사진
(콘크리트 숲처럼 보이는 도시사진:동경)을 보며 녹지가 전혀 없는 이런 곳에서도 잘도 사네요. 하더라!
 
나는 20대에 일이 없어서 일을 찾아다녔다.
일을 주지 않았다.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클라언트 없이 내가 직접 설계를 해서
설득하러 다녔다.
건물을 녹지로……. 녹음이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다. 도시 건물설계(저층은 도서관, 박물관, 중층은 곳곳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옥상은 생태공원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여 주며)를 시장께 보여줬다. 거절당했다.
꿈이 많은 이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젊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참고: 그 당시는 1960년대 이었음)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작은 것을 만들고 큰 것을 만들자 하고 주택설계를 했다.
의뢰인은 3인이 사는 집을 지어 달라고 했다. (부부와 어린 아기)그래서 3인 살 수 있는 집을 설계를 해 주었다.
사실 계획이라는 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집을 지은 지 1년 후에 가족이 늘었다.
3인의 가족구성에서 애기가 생겼다. 그런데 쌍둥이였다. 나는 3인이 살 수 있는 집을 설계를 했는데
1년 만에 5인 가족이 되어버렸다.
건축주가 나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했다. 그것은 당신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주는 화가 났다. 이 책임은 안도씨 당신이 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집을 샀다.
그 이후로 나의 건축사무소로 활용했다. 내가 지어보고, 살아보고, 사용료(세금)를 내보니까. 건축이 뭔지 알겠더라.
 
건축가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건축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건축은 사는 사람, 만든 사람, 보는 사람이 있다.
재미있는 건축을 하기 전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후 건축사무소를 계속해서 증축을 했다. 불법이었다.
그러나 시에서 젊은 건축가의 재미있는 집이라고 용인해 줬다.

 
어느 날 개 한마리가 건축사무소에 들어왔다.
삭막한 사무실에 개한마리 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일본 유명건축가 당게겐조(개인적으로 내가 존경하는:동경 도청사 설계)라고 부르려 했다.
주변에서 반대를 했다.
살아 계신 유명건축가를 발로 차고 해도 되겠냐고. 나는 좋아하는 분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르꼬르뷔제라고 부르기로 했다.
(개사진을 보여 주며) 개 등의 문양이 르꼬르뷔제가 설계한 의자와 너무 비슷하다.(굉장히 흐뭇해 보였음)
나는 일 거절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돈보다 꿈을 위해 일한다.
거절하고 싶은 의뢰인의 프로젝트를 접할 때 르꼬르뷔제(자신의 개)가 어렁거린다.
나는 개가 싫어하는거 같아서 일 못하겠다고 핑계를 댄다.

 
요즘은 옛 것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옛 것은 존중되어져야 한다.
고건축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있다.
나는 외관을 부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넣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임산부) 있는 형상의 건물을 생각했다. 그러나 건축은 객관적이고 기술적이어야 한다.
거절당했다. 나는 항상 거절당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또 제안할 것이다.
청춘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있다. 이상을 잃으면 늙는다.
이상을 향해 달려라. 다른 사람의 폐를 조금 끼치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이지 생각해라.

 
산도리 박물관을 설계할 때다.
산도리+오사카+국가 부지가 함께 있었다. 나의 설계안은 국가 부지를 침범하여 제안했다.
산도리, 오사카, 국가상대로 설득했다.
결국 허가를 받고 시공이 되었다.
바닷가에 있는 건물이다. 데크에 손잡이가 없다. 청계천도 손잡이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지킨다는 사실은 알았다. 산도리 박물관에서 손잡이가 없어도 물에 빠진 사람은
15년 동안 한명도 없었다.

고베시 시장은 고베시를 꼭 가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그래서 우선 깨끗한 바다를 만들고 그리고 범고래를 키우면 어떨까하고 제안했다.
 (실제로는 범고래 형상의 조형 상징물) 시장은 엉뚱한 발상이라고 거절했다.
시장의 임기는 4년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서 제안 할 예정이다.
 
요코의 국제회의장은 시멘트 채굴장이었다.
민둥산을 푸른 산으로 만들고 녹음이 풍부한 건물로 만들고자 했으며
매력적인 거리를 위해 조개해변을 구상했다.
일본인은 조개를 좋아하기 때문에 진짜 조개껍질 100만개를 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개는 거의 껍질없이 수입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패 조개껍질 처리장을 발견하여
진짜 조개껍질 해변을 만들 수 있었다.
관광 온 아주머니와 어린이는 조개가 물속에 서서히 잠기는 광경을 보고 감격해 했다.
아주머니는 정말 플라스틱 조개껍질이 진짜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감성이 없는 어머니라. 안타깝게 생각했다.
여러분은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가 되세요.
 
백담원은 추모의장이다. 멋있는 곳이다. 꼭 가봐라. 권유하고 싶다.
 
건축하는 사람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고베시 공동주택 설계의뢰가 들어왔다.
처음은 평탄지에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경사지에 집을 짓자고 제안했다.
나는 선택을 할 때 항상 어려운 선택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패는 항상 있다.
순탄하지만은 않다. 60도 넘는 경사지였고, 대형건설사 마저 포기를 했다.
중소건설사에서 10년을 걸쳐 완성해 나갔다. 옥상은 정원이 되고 창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집이 되었다.
1기 공동주택(고베시 공동주택은 다다오의 대표작임)이 완성되었을 때 옆 땅 건축주가 4배 큰 땅이니
내 것도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나는 거절했다.
10년을 힘들게 완성했는데..4배가 크다니.. 건축주는 망설이는 나에게 “다다오씨 이제는 늙으셨군요.”
그 말에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꿈이 사라지면 은퇴한다.

 
그리고 2기 공동주택이 완성될 쯤 옆 부지에 대형 공동주택이 있었다. 저것을 부수고 다시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3기 공동주택이 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고베지진이 있었고 2기 옆 부지의 대형 공동주택의 설비가 망가졌고 새로 짓게 되었다.
나는 미리 그려둔 설계를 제안했고 그것은 실현됐다.
앞을 내다보며 하다보면 좋은 일은 생긴다.
4기 공동주택은 중략...

 
나오시마 섬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섬이다. 생각이 없으면 빨리 떠나고 싶은 섬이기도 하다.
그 곳에 박물관은 지하에 지었다. 많은 작품이 전시 되어있다.
특히, 쿠사마 야요이(76세)의 호박처럼 생긴 작품이 있다. 호박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막 화를 내면서
건축가라서 센스가 없다고 했다. 이 분은 존경한다.(굉장히 특이하게 생긴 추녀임)
하지만 커피나 식사는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리차드롱이다. 화가에게 붓을 함부로 주면 안된다. 붓을 주면 항상 어디에고 그린다.
작품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감을 얻으면 공짜라도 막 그린다.
리차드롱은 항상 원을 그린다. 내 미술관 벽면에 하나의 원을 그리더라!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고는 돌아갔다.
한 달 후 다시 와서 또 하나의 원을 그렸다. 그래서 물어봤다. 원 두 개를 그리는데 한달씩 걸리냐고...
그리고 원안에 무언가를 써넣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만했으면 했다. 완성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미완성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 가을에 와서는 원안에 써 놓은 글씨 위에 까만 칠을 해버렸다.
리차드롱의 집 개인 방안은 온통 원만 가득하다고 한다. 병은 병을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붓을 안 줄 생각이다.
 

?작가의 작품은 암흑 전시장에 있다. 들어가면 10분간 암흑이다.
암흑 속에서 뭔가 있을 기대감과 호기심이 발동된다.
10분후에 마침내 사각형 푸른빛이 보인다. 사람들은 감격한다.
작품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자기가 10분이나 참았다고 생각하면서 감격한다.
 
건축은 어디에서든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추아트뮤지엄은 태양광을 이용하여 전시되는 박물관이다.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있는 곳이다. 호기심이 없으면 지겹게 느낄 것이다.

(작은 주택을 보이며) 개조해보고 싶었다. 건축주는 나의 설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제안을 할 생각이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분의 나이는 85세다.

 
가수 보노(2006년 칠레 정부 문화예술 부문 최고상 '파블로 네루다 문화훈장')는 미술가의 집을 의뢰했다.
나는 그때 보노를 몰랐다. “어메징그레이스” 불러줬다. 그냥 “노래 잘하는 아저씨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집은 24mm 철판으로 하나의 천으로 느껴지게 설계를 했다. (사실 건축 외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음).
그 이후 도교(1964년) 스타디움의 천의 지붕의 탄생의 계기가 된다. 중략..

지구를 보호하는 것도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 한다. 지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일본 내 쓰레기 매립장 위에 친환경공간으로 녹지대를 만들고 싶다.
바다위에 떠있는 바다의 숲을 만들고 싶다.
서로를 생각하는 세상. 이 지구내에 나라와 나라를 넘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